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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2-05 14:23
충격!! 브라질 축구 영웅 소크라테스 사망! 그는 누구인가?
[뉴스브릿지=김윤호 기자] 브라질 축구 영웅 "소크라테스 데 올리베이라"가 4일 사망하여 많은 축구 팬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브라질 언론 등 외신은 축구의 영웅 “소크라테스 데 올리베이라(57)"가 4일(현지시간) 1일 식중독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장출혈에 이은 패혈증으로 의식불명에 빠졌으며  중환자실로 옮겨진 그는 의료진의 노력에도 결국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 했다.

“소크라테스”의 본명은 “삼파이우 데 소사 비에이라 데 올리베이라 소크라테스 브라질레이우”다. 그는 1952년 2월 14일 브라질 북동부 작은 마을 벨렘에서 태어나 10살이 되던62년 지역축구팀에 입단해 축구를 배운다. 이후 15살 때 ‘보타포고SP’로 이적했다.





78년까지 보타포고SP에서 활약한 뒤 당대 최고 명문 팀 ‘SC코린치안스’로 이적했으며 이곳에서 그는 79년과 82년 브라질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SC코린치안스’에서 활약하던 79년, 25살의 “소크라테스”는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며 그가 처음 치루었던 경기는 ‘파라과’이와의 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 ‘브라질’은 6-0 대승을 기록했으며 80년에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열린 ‘월드컵 창설 50주년 기념대회’에서 “소크라테스”는 팀의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당시 대회는 ‘잉글랜드’를 제외한 역대 월드컵 우승국이 전부 참가했던 대회였는데 당시 ‘브라질’은 결승에서 ‘우루과이’에게 1-2로 패했지만 ‘독일’과 경기에서 4-1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소크라테스”다. 이후 대표 팀에서는 주장으로 확고히 자리를 굳히며 “팔카우”, “후니오르”, “지코” 등과 함께 브라질 삼바 군단의 주축 선수로 각인된다. 

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우승 후보 0순위였다. 당시 6조에 속한 ‘브라질’은 첫 경기였던 소련전에서 2-1로 승리했고 ‘스코틀랜드’,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는 각각 4-1, 4-0으로 승리하며 조1위로 2차 조 별 라운드에 진출했다. '브라질'은 2차 예선 첫 경기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3-1로 승리하는 출발이었지만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파울로 로시"에게 해드트릭을 허용하며 2-3 역전패를 당해 조 2위를 기록해 4강 진출에 실패했고 ‘브라질’을 물리친 ‘이탈리아’는 결승에서 ‘독일’을 3-1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1984년 ‘이탈리아’의 ‘AC피오렌티나’로 이적해 유럽 진출을 시도했지만 수비를 강조하는 이탈리아 축구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한 “소크라테스”는 단 1시즌 만에 유럽 무대를 떠나 ‘브라질’로 돌아왔고  85년 새롭게 둥지를 튼 클럽은 ‘CR플라멩고’였다.

“소크라테스”는 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우승을 향해 다시 도전한다. ‘브라질’은 ‘스페인’과의 첫 경기를 1-0 승리로 장식하며 우승 후보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이 경기에서 골을 기록한 건 “소크라테스”였다. 이어 ‘알제리’와 ‘북아일랜드’를 각각 1-0, 3-0으로 물리친 ‘브라질’은 16강에서 ‘폴란드’를 맞아 4-0의 대승을 거두며 8강까지 진출했다. 8강에서 ‘브라질’은 ‘프랑스’에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했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브라질’의 1번 키커로 나섰지만 골키퍼 손에 막히면서 탈락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었다.





87년 펠레의 클럽으로 유명한 ‘산토스FC’로 이적한 “소크라테스”는 1년 더 활약한 뒤 88년 34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 했다. “소크라테스”의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아버지는 축구선수 이외에 다른 번듯한 직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소크라테스”가 의학을 공부한다는 전제하에 축구를 허락했고 이후 의대 재학 중 국가대표에 선발됐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경험을 살려 은퇴 이후 병원을 개업해 의사로 활동하며 철학박사 학위도 따기도 했으며 이때부터 사람들에게 ‘닥터 소크라테스’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50살이던 2004년 “소크라테스”는 은퇴를 번복하고 ‘가포스타운’에 입단해 교체선수로 1경기를 소화했다. 덥수룩한 수염, 의사라는 직업, 줄담배와 음주를 즐기는 선수 등 여러 가지 특이한 이력을 가졌던 “소크라테스”는 이후 정치 쪽에도 관심을 가져 좌파 노동당의 일원으로 국회의원 선거에도 나서기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통산 A매치 63경기에 출장해 25골을 기록했으며, 83년 ‘올해의 남미 선수상’을 받기도 했으며  국제축구연맹(FIFA)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축구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명으로 평가받아왔다.





이와 같이 “소크라테스”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같은 시대에 활동한 은퇴선수들을 포함해 축구스타들이 애도의 뜻을 전하며 슬픔에 잠겼다.

“로시”는 “축구역사의 한 부분이 사라졌다. 스페인월드컵에서 우리가 승리했지만 난 아직도 소크라테스가 대표팀 골키퍼 디노 조프를 향해 때린 슛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그라운드에서 항상 힘이 넘쳤고 활발하게 움직였다. 또한 내가 본 선수들 중에서 가장 영리한 플레이를 펼친 선수”라며 그에 대한 기억을 회상 하였다.

“소크라테스”와 함께 두 번의 월드컵에 참가한 “지코” 역시  “그는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브라질대표팀에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지만 그는 언제나 최고였다. 나는 최고의 선수와 함께 뛸 수 있은 특권을 누렸다”고 소크라테스를 추켜세웠으며 대표 팀 후배인 “호나우두”는 자신의 트위터에 ‘편하게 잠드세요, 닥터 소크라테스’라는 글을 남기고 히바우두도 브라질 일간지 글로보스포르트와 인터뷰를 통해 “아침에 일어나서 소크라테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오늘은 정말 슬픈 날”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또한 “소크라테스”가 1984-85시즌 뛰었던 ‘피오렌티나’는 이날 ‘AS 로마’와 ‘세리아 A’ 경기에서 앞서 그를 추모하는 묵념을 가졌고 ‘피오렌티나’ 선수들은 왼쪽 팔에 조의를 나타내는 검은색 밴드를 차고 경기에 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12월 5일(한국시각) “소크라테스”의 사망을 보도하면서 “그의 월드컵 우승을 막은 파울로 로시도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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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호 기자 sportsnews@newsbridge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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