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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0-21 23:34
카타피사망! ‘아랍의 봄’은 오는 가? 남은 과제와 북한의 반응은?
[뉴스브릿지=최정복 기자] "카다피"가 사망하면서 ‘아랍의 봄’은 모두 3명의 독재자를 끌어 내렸다. 이로 인해 중동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며, 리비아의 동지로  알려진 북한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아랍의 봄’은 길거리에서 행상을 하던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경찰의 부패와 폭행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항의의 표시로 분신자살을 하면서  지난해 2010년 12월18일 튀니지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수 십년간의 독재와 절대 왕정, 인권 침해, 정부 부정부패, 경제정책 실패, 높은 실업률, 빈부격차 등의 불만과 더불어 높은 청년 실업에다 높은 식품가격으로 인한 기근이 심해 진 것이다.











이들의 독재정부를 향한 분노는 튀니지를 넘어 알제리, 요르단, 이집트, 예멘 등 아랍국가와 북아프리카 국가로 퍼졌으며 청년실업률이 높은 이스라엘에서도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으며 결국, 튀니지의 “지네 엘 아비딘 벤 알리” 전 대통령이 올해 1월 14일 사우디 아라비아로 피신했으며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지난 2월11일 사임하며  30년간의 독재정치를 끝냈고, 요단의 “오마르 알-바쉬르” 대통령은 2015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을 비롯하여 이라크의 “누리 알-말리키” 총리 역시  2014년 임기가 끝나면 물러나겠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사우디 아라비아, 바레인 등 비교적 안정적인 왕정 역시 시민들의 민주화와 경제 불평등 개선 요구를 수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멘의 “알리 압룰라 살레” 대통령은 4월26일 30일내 권좌에서 물러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아 정부세력과 충돌을 하고 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전 대통령)

이렇듯 경제적 불평등, 독재 권력의 부패, 인권탄압 등 중동과 아프리카의 고질 적인 문제를 현대화를 이끌고 있는 ‘아랍의 봄’은 쇼셜미디어의 등장으로 독재정부의 인터넷 검열을 뚫는데 큰 원동력이 되었으며  “카다피”사망으로 인해 민주화의 바람의 영향에 급물살을 탈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유혈사태가 계속되는 예멘과 시리아의 경우 반정부 세력이 더욱 힘을 얻으면서 독재자들을 압박해 국면 돌파의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예멘의 살레 대통령)

하지만 리비아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이 있다.
“마무드 지브릴” NTC 총리는 “카다피”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통합’을 강조하면서 “모든 구악과 더불어 ”카다피“는 우리의 사랑하는 나라에서 사라졌으며 이제는 하나의 국민, 하나의 미래라는 새로운 리비아를 열어나갈 때”라고 말하고 있는데 NTC 등 현 정국을 이끌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카다피”는 리비아에 어떤 정부 기관이나 정치  적 정당 조직도 만들어놓지 않았고 리비아에는 독립된 시민사회도 존재하지 않으며 시민권, 언론의 자유라 것도 없고 경제는 석유에만 일방적으로 의존해 왔다.








리비아의 민주주의란 단지 다양한 분파의 이슬람주의와 부족주의가 권력 공백을 메우고 있는데 부족국가인 리비아의 전통상 단일화 되는 것 자체가 큰 숙제 인 것이다. 리비아의 가장 큰 부족인 와팔라족은 최후까지 카다피를 지지했으며 새로운 정부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엔, 카다피의 마지막 전투 장면은 카다피 지지자들을 북든 것으로 아직까지는 이해관계 때문이든 부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충성심이든 “카다피”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들은 많은 것이다. 문제는 이 와 같은 숙제들을 수행 하는데 있어 주도적으로 끌고 나갈 “카다피” 인물이 없다는 것인데, 결국에는  NTC의 역량이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NTC는 올해 초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가장 먼저 반 카다피의 깃발을 들었지만 가장 교전이 치열했던 미스라타의 무장투쟁 지도부는 NTC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었으며  지난 8월 수도 트리폴리에 깃발을 꼽은 것은 나퓨사 산악 지대에서 온 일단의 반군 세력이었다. 또한  벵가지의 NTC 내부에도  NTC 내의 보수적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의한 통치가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친 서방 성향의 세속주의자들은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하기 원하고 있다.





“지브릴” 총리 역시 지난달 30일 유엔(UN) 연설에서 자신은 새 정부에서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또한 해외파인 자신이 국내에서는 설자리가 없으며  특히 이슬람주의 세력들은 결코 그를 지휘관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NTC의 최고위 인물인 “무스타파 압델 잘릴” 위원장은 국내 인지도는 있지만 과거 “카다피” 정권 법무장관 시절 반대파들에 대한 조직적인 투옥과 고문을 주도한 ‘전력’ 때문에 문제로 대두 되고 있으며 결국 서구식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벵가지의 젊은이들은 그들을 대표할 새로운 인물을 찾고 있지만 아직 그런 인물은 출현하지 않은 것이다.



(지브릴 총리)

이와 함께, 서방 주요국들의 간섭도 리비아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영향은 리비아 원유생산 정상화 노력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이는데  글로벌 석유기업들이 리비아로 복귀하면서 생산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포스트 카다피 체제가 결국은 각국의 기여도에 따라 막대한 경제적 이익이 돌아가는 석유사업 개발권과 전후 복구사업을 각 국가에 분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리비아는 이미 “카다피” 시절부터 석유생산 능력을 대폭 확충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으며 경제의 대부분을 원유생산에 의존해온 리비아의 특성상 새 정부 역시  국가 재건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원유 개발권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막대한 비용을 부으면서 리비아 군사작전을 지휘한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이 가장 많은 혜택을 볼 것 으로 예상되며 카다피 정권과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중국과 러시아는 뒤늦게 리비아 과도정부를 실질적 권력으로 인정했고,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운데 유일하게 반군을 인정하지 않았던 중국은 '리비아의 친구들'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카다피 정권 시절에 맺은 경제협력을 비롯한 각종 투자 계약이 성실히 이행되기를 바라면서 재건 사업에서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새 지도부와 우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돌아가는 이익은 크게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특히 프랑스는 리비아 군사작전을 주도한 것 외에도 반군 세력인 국가과도위원회(NTC)를 가장 먼저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리비아의 해외동결 자산 해제에 앞장섰으며 76억유로의 리비아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영국 역시 반군이 트리폴리를 장악하자 리비아 동결자산을 2억8천만디나르화로 찍어 리비아로 공수 한 바 있다. 미국, 프랑스, 영국은 지난달 1일 ‘리비아의 친구들’이란 이름으로 프랑스 파리에 모여 리비아 사태 후속 조치를 논의한 세계 60개국과 국제기구들도 이라크 전후 복구 사업 등에서 상당한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혼란가운데 세계 여론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쏠리고 있다. 북한과 리비아는 그동안  오랜 인연을 쌓아 왔는데  북한은 김일성 주석 시절인 1974년 리비아와 수교한 이래 1982년 친선협조동맹조약, 1984년 군사협력 의정서 등을 맺으면서 정치,군사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다졌으며 1982년 평양을 방문한 카다피를 극진하게 환대하고 친교를 다진바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그동안 탄도미사일을 비롯한 무기를 리비아에 수출해왔고, 리비아가 과거 핵개발을 추진했을 때 북한과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도 받은바 있으며 재래식 무기를 아프리카로 수출하는데 리비아가 통로로 중요했고, 카다피 정권도 한국과 경제적 협력에 치중하면서도 최근까지 북한과는 정치적으로 우호적인 협력의 끈을 놓지 않은 것으로 잘 알려 져 있다. 북한 역시 지난해까지 매년 9월1일 리비아 혁명 기념일에 김영남 최고인민회가 직접 축하시신을 보내는 등의 정성을 쏟았다. 이런 "카다피"와의 관계로 북한 매체는 올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리비아 공습을 ‘전쟁범죄’로 규정하여 “지구상에서 강권과 전횡이 존재하는 한 자기 힘이 있어야 평화를 수호할 수 있다는 진리가 다시금 확증됐다”며 맹비난을 쏟아 부으며 리비아 내전사태가 격화되는 와중에도 리비아에 파견돼 있던 근로자와 의사, 간호사 등을 귀환조치하지 않고 카다피 정권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러한 상황들은 북한은 앞으로 더욱 핵무기에 집착할 것이고, 협상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더울 힘들 것으로 보이며 내주 열릴 2차 북미 대화에 이어 앞으로 북핵 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어내는 일이 그만큼 어려워 진 것이다.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지난 2003년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겠다며 핵무기 개발계획을 포기하고 고농축우라늄(HEU)을 포함한 모든 핵계획을 포기하고 미국이 요구한 검증방안을 수용하였고 미국은 북한을 향해 ‘선(先) 핵포기’를  ‘리비아 모델’을 수용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결국 2003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상황에 처해있다. 서방의 대규모 공습을 받은 “카다피”가 끝내 비참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한 장면을 지켜본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누구도 알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길게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 “카다피”의 처참한 최후를 지켜본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상대로 국제사회가 힘든 시간을 더 보 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북한은 “카다피”의 죽음을 서방국가의 책임으로 몰아가면서 억제력을 강화하는 명분으로 이용하려고 할 것이며 아울러 외화벌이 루트로서 리비아의 중요성 때문에 NTC와 관계도 만들어가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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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복 기자 malahide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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