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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2-13 18:08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별세! 그는 누구인가?
[뉴스브릿지=최정복 기자] 한국의 '철강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2월13일 오후 5시께 지병으로 별세였다!





고(故)박태준 전 회장은 1927년 경남 동래군 장안면 (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임랑리에서 태어나 6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자랐다. 1945년 와세다 대학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으나 해방으로 학업을 중단한 후 귀국하여 1948년 육군사관학교를 6기로 졸업하고 육군소위로 임관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공으로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포스코를 세계적 철강기업으로 성장시킨 박태준 전 회장은 1961년 단국대학교에 편입, 1963년 8월 정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5ㆍ16 군사혁명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으나 박정희가 쿠데타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쿠데타 전날 가족을 맡겼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상공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입안에 관여했다.1963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했고, 이후 경제인으로 변신하면서 1964년 대한중석 (현재 대구텍) 사장으로 임명돼 1년 만에 대한중석을 흑자기업으로 바꾸었고 1968년 4월 포항제철의 초대 사장이 되어 10년 만에 연 550만 톤의 철강을 생산하는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경제 제1위원장으로 취임한 것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하여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 전국구)로 당선돼 국회 재무위원장을 역임하고 1988년 민주정의당 대표를 맡았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 최고위원이 되었다. 박태준은 포철 회장직을 임기 중이던 1992년 10월 물러났다.

박태준회장은 포철을 창업 25년이란 짧은 기간에 세계 3위의 철강업체로 키운 한국철강업계의 명실상부한 대부이자 세계철강업계의 거목으로 꼽혀 왔다. 설립 당시부터 정치 외풍으로부터 포철을 지키는 울타리 역할을 해 온 박 명예회장은 김영삼 정부와 불화로 결국 정권 수립 직전에 회장직을 내놨다.

지난 9월, 고(故)박태준 회장은 포항에서 포스코 재직시절 함께 근무했던 직원과 만남을 가지며 “눈부신 성장을 이룬 오늘의 대한민국은 여러분들의 피땀 흘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청춘을 바쳤던 그날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며 우리의 추억이 포스코의 역사 속에, 조국의 현대사 속에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말하며 뜨거운 눈물을 보였고, 직원들 역시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허허 벌판에서 포항제철을 일궈낸 고(故)박태준 회장의 리더십의 원동력은 청렴과 책임이었다.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실화로 예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받는 기본협약을 체결하고 포항제철 공사에 한창이었을 당시 포항제철 서울사무소에 인사청탁과 납품업자를 추천하는 전화가 폭주했고 그 중에는 당시 날으는 새로 떨어뜨린다는 박종규 청와대 실장의 청탁도 있었지만
고(故)박태준 회장은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하면서 청탁을 과감히 거절했고, 그의 강직함을 알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해로 그 누구도 더 이상 청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부하직원에 대한 자상함도 박 명예회장 리더십의 핵심 중 하나로 꼽힌다. 포항제철 건설 당시 가장 먼저 한 일이 사원주택과 학교, 그 밖의 편의시설들을 짓기로 결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故)박태준 회장의 지인들은 “사람을 긍정하는 정과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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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복 기자 newsbridge@newsbridge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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