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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8-19 10:08
[월/칼럼] 박상하 교수의 연기 컬럼 - 역할로 들어가자 !
백 한 번째 이야기 - 장면연극 15
....................................................................박 상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교수)

- 실기실에 교육자가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시작해 볼까요?
- 무대 상수 쪽에 등,퇴장로가 만들어져 있고, 중앙의 긴 탁자 위에 흰 색 보가 씌워져 있다. 왼편 앞쪽에는 작은 등받이 의자가 놓여 있다. 아르카지나로 분한 문숙은 바이올렛 색깔의 긴 치마를 입고 귀에는 작고 동그란 진주 귀걸이, 손목에는 금색 팔찌를 차고 있다. 그녀는 탁자에 앉아 팔꿈치를 괴고 이마에 손을 올리고 있다. 그 상태에서 문숙은 “준비되면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속삭인다.

- 잠시 후, 양복차림의 트리고린으로 분한 정태가 책을 열심히 뒤적이며 들어온다. 그는 왼쪽 앞의 작은 등받이에 거의 자동적으로 앉으며 ‘121페이지, 11, 12줄이라..... 여기 있군..... (읽는다) 언제라도 내 생명이 필요하면, 와서 가져가세요.’ 그는 책을 무릎에 내려놓고 그 구절을 계속 중얼거린다. 문숙은 화장을 고치고 이내 시계를 보며 ‘곧 마차가 준비될 거야.’ 라고 말한다. 정태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중얼거린다. ‘언제라도 내 생명이 필요하면, 와서 가져가세요.’ 아르카지나역의 문숙은 화장품을 조그만 백에 집어넣으며 ‘당신, 짐은 다 챙겼지?’ 라고 말한다. 트리고린은 여전히 중얼거린다. ‘그래, 그래..... 이 순수한 영혼의 고백이, 왜 내겐 슬프게 들리고 내 마음을 이렇듯 아프게 조이는 거지?..... 언제라도 내 생명이 필요하면, 와서 가져가세요.’ 그리고 그는 천천히 아르카지나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녀를 본다. 아르카지나는 여전히 화장품을 챙기고 있다. 그는 낮고 강한 어조로 그녀에게 ‘하루만 더 있다 갑시다!’ 라고 말한다.

아르카지나,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보지 않은 채 고개만 가로 젓는다. 정태는 그녀 쪽으로 걸어가 멈춰 선다. 그리고 그녀에게 ‘더 있다 가!’ 라고 말한다. 문숙은 그를 빤히 쳐다보고 그의 얼굴을 만지며 ‘이곳에 당신을 붙잡는 것이 뭔지 난 알아. 제발 정신 차려. 당신은 도취된 거야. 정신 차려.’ 라고 말하고 난 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챙이 넓은 모자 쪽으로 간다. 정태는 그 자리에 서서 단호하게 말한다. ‘당신도 냉정하고, 현명하고 신중해져, 제발. 그리고 이 모든 걸 진실한 친구로서 바라봐.’ 그리고 그는 빙 둘러서 그녀 앞쪽에 가서 선다. 그녀의 손을 잡는다. ‘당신은 희생할 수 있어..... 친구가 되어 줘, 나를 놔 줘.’ 그의 이 말은 진심어린 애걸조이다. 아르카지나역의 문숙은 그의 손을 세게 뿌리치며 소리친다.

‘그렇게 마음이 끌리는 거야?’ 트리고린역의 정태는 바로 맞받아서 소리친다. ‘그녀에게 무작정 끌리고 있어! 어쩌면 이게 바로 나한테 필요한 것일지도 몰라.’ 그녀는 크게 콧방귀를 뀌며 ‘시골소녀와의 사랑이?’ 라고 말하고 나서, 트리고린의 얼굴을 다시 어루만지며 ‘오, 당신은 정말 자신을 잘 몰라!’ 라고 속삭인다. 정태는 뒷걸음치며 물러선다. 그리고 고개를 객석으로 돌리며 천천히 말한다. ‘때론 사람들은 걸어가면서 잠을 자는데.....’ 다시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바로 지금 내가 당신과 이야기하지만, 마치 잠자며, 꿈속에서 그녀를 보고 있는 것 같아.....’ 라고 말하고 난 뒤, 그녀에게 다가가서 다시 손을 잡는다. ‘달콤하고 묘한 꿈이 나를 사로잡고 있어..... (그녀의 손을 꽉 잡으며) 나를 놔줘.....’ 그녀는 그의 눈을 한참 응시한다. 갑자기 일어서며 천천히 말한다. ‘아냐, 아냐..... 난 평범한 여자야.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돼.....’ 그녀는 재빨리 그의 품에 안기며 ‘날 괴롭히지 마, 보리스..... 무서워.....’ 라고 울먹이며 속삭인다. 침묵, 그녀의 포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다가 그는 천천히 그녀를 떼어낸다. 그리고 의자에 그녀를 조심스럽게 앉힌다. 그는 무릎을 꿇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한다. ‘만일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은 특별한 여자가 될 수 있어.

환상의 세계를 향한 젊고, 매혹적이고, 시적인 사랑, 이것만이 세상에서 행복을 줄 수 있어! 이런 사랑을 난 아직 경험하지 못했어.....’ 그는 재빠르게 일어서며 ‘젊었을 때는 시간이 없었지. (이리저리 걷는다) 편집실 문턱을 드나들며 가난과 싸워야 했으니까..... (그녀 쪽으로 몸을 돌린다) 마침내, 이제 이런 사랑이 찾아와서 손짓하고 있어..... (그녀에게 다가와 다시 무릎을 꿇는다) 그걸 피해야 할 이유가 뭐지?’ 아르카지나역의 문숙은 큰 소리로 외친다. ‘미쳤어!’ 트리고린역의 정태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소리친다. ‘그러니, 날 놔 줘!’ 문숙은 그를 뿌리치고 울먹이며 말을 띄엄띄엄 잇는다. ‘오늘, 당신들 모두 나를 괴롭히려고 작정한 것 같애!’ 그리고 그녀는 그의 어깨 위에 머리를 파묻는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손이 천천히 그녀의 머리에 닿는다.

- 여기까지 준비했습니다. 정태가 멋쩍게 돌아서서 말한다. 문숙도 얼른 눈물을 훔치고 배시시 웃는다.
- 수고했어요! 교육자의 목소리가 밝다. 그는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멋지고, 감동적이고,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의 훌륭한 시연이었습니다.’
- 학생들은 문숙과 정태에게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보낸다. 문숙과 정태는 어깨를 움츠리며 머쓱해 한다.
- 잠시 쉬고 이야기를 좀 나눠 볼까요? 교육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하자, 학생들은 문숙과 정태 주위로 몰려들어 포옹하고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한다.         

2013. 08. 19.

연기과 박 상 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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