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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8-12 10:40
[월/칼럼] 박상하 교수의 연기 컬럼 - 역할로 들어가자 !!
백 번째 이야기 - 장면연극 14
....................................................................박 상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교수)

- 10분간의 휴식 후, 교육자가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학생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지만, 아까와는 사뭇 다른 태도와 표정을 하고 있다. 현정은 이미 세수를 하고 온 듯한 얼굴이고, 소희와 승욱은 필기류를 갖추고 마치 전투태세를 완료한 듯한 자세이다.
- 자, 방금 보여준 소희와 승욱의 <바냐삼촌>의 시연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볼까? 현재까지 이해하고 있는 엘레나라는 인물과 아스트로프라는 인물에 대해 간단하게 말해 보세요, 현정, 승욱?
- 현재까지 저는 옐레나에 대해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주계급의 딸로 태어나 당시 최고의 음악학교인 뻬쩨르부르그 음악원을 졸업하여, 나이 든 교수인 세레브랴꼬프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교수의 부인으로 손색이 없었고, 교수부인으로서 그녀는 부와 명예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결혼생활은 따분하고 무료함을 그녀에게 제공하였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피아노를 치거나, 책을 보거나, 산책을 하는 정도입니다. 현정은 자신의 노트를 힐끗 보며 말을 이어간다.

- 그렇다면 옐레나의 삶의 목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교육자가 현정의 말을 가로채며 다시 묻는다.
- ..... 음, 그걸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만일 굳이 그녀의 삶의 목표를 꼽으라면 자신의, 가족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현정은 말꼬리를 흐린다.

- 저는 현재까지 아스트로프를 이러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명문대학교의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자신의 의술이 필요한 곳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돌보는 특이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과 천년 후를 생각하며 산에 한 그루 나무를 심는 기이한 인물이기도 하구요. 또한 그의 미적 기준에 의해 아름다운 여자에게는 무조건 끌리는 희한한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승욱은 아스트로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차근차근 말한다.
- 오케이. 체홉의 등장인물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며, 또 다른 인물은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체홉의 인물들은 ‘노동’이라는 단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바냐의 끝 대사, ‘일을 해야지, 일을!’이라는 말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스트로프는 옐레나를 아름다움 그 자체이지만, 일을 하지 않고 빈둥빈둥 거리기에 혐오한다고 합니다. 이 말 또한 일, 노동이 인물들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는 주요한 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인간생활의 최고의 미덕은 ‘노동’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노동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며, 인간의 가치는 노동을 통해 발휘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옐레나는 바냐와 아스트로프에게 있어서 혐오스러운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아스트로프의 ‘아름다움은 어쩔 수가 없어!’ 라는 말은 일을 하지 않는 그녀이지만 너무나도 아름답기에 육체가 끌리는 우스운 관계이기도 합니다. 한편 늙은 교수인 세랴브랴꼬프에게는 이러한 옐레나가 무척 부담이며, 불안한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옐레나는 일을 하지만, 그것은 생산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소일거리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그녀는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몰라서 못하는 경우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아무튼 그녀는 생산적이지 않고, 적극적이지 않은 일만 하는 인물입니다. 아마 우리 주변에서도 그러한 여성은 어럽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하여 매사에 적극적이고, 생산적이고, 전인류애적인 일을 하고 있는 아스트로프는 당연히 그녀에게 있어서 동경과 호기심의 대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 주위의 남자들은 일은 하지만 지저분하고, 고리타분하고, 그녀의 관점에서 본다면 멋진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반면, 아스트로프는 기인입니다. 그것은 텍스트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예를 들면, 의사로서의 편안한 삶을 내팽겨 치고 시골 마을에서 환자를 돌보는 것, 천년 후를 내다보며 묘목을 심고 시대별로 마을의 지도를 그리는 것, 아프리카를 동경하는 것, 사물과 인간의 본질을 보려고 하는 것 등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는 행동하지 못하는 ‘잉여인간’ 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당시 러시아 문학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동시대의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이상과 현실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진 샌드위치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이러한 사고와 형상을 가지고 있는 둘이라면 분명 흥미로운 관계가 아닐까? 옐레나에게 있어서 아스트로프는 항상 주의와 관심의 대상이며, 아스트로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둘의 만남은 분명 어떤 전류의 흐름, 오묘한 공기나 분위기 등이 흐를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해서 이 둘의 관계에서 분위기와 공기를 형성해야함이 우선입니다. 아마 현정과 승욱도 이러한 경우에 놓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공기와 전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숨기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목표를 결코 드러내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들에게서 발생하는 말은 공허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목표를 철저히 숨긴 말이기에 엄청 긴 말을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실상 목표 밖에서 배회하고 있는 쓸데없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포즈나 ‘.....’, ‘침묵’은 당연한 결과물입니다. 이제 둘 간에서 발생하는 ‘침묵’은 우리에게 속행동이나 겉행동으로 대체되어야 마땅합니다. 따라서 내가 여러분에게 체홉의 ‘말없음’을 단순한 침묵이 아닌 행동으로 모색하거나 찾아 실행해보라고 조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했나요?

- 학생들은 교육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공책에 머리에 파묻고 열심히 적고 있다. 구석에 앉아있는 현정은 다시 눈을 끔벅거린다.   

2013. 08. 12.

연기과 박 상 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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