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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8-05 16:21
[월/칼럼] 박상하 교수의 연기 컬럼 - 역할로 들어가자 !
아흔 아홉 번째 이야기 - 장면연극 13 !
....................................................................박 상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교수)

- 교육자가 실기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교육자가 앉은 책상 위의 노트에는 다음과 같은 순서가 적혀 있다.

1. <바냐삼촌> ..... 옐레나(소희)/아스트로프(승욱)
2. <갈매기> ..... 아르카지나(문숙)/트리고린(정태)
3. <벚꽃동산> ..... 라네프스카야(주희)/트로피모프(기주)
4. <바냐삼촌> ..... 소냐(현정)/옐레나(정하)
5. <세자매> ..... 마샤(수정)/베르쉬닌(무신)

- 가림막으로 외벽을 만들고, 오른쪽으로 등퇴장로가 보인다. 무대 중앙에는 긴 탁자와 등받이 의자가 놓여 있다. 무대 왼편에 둥근 테이블과 의자 몇 개, 테이블 위에 주전자, 찻잔이 오봉에 놓여 있다. 그리고 왼쪽 벽면에 타원형의 거울이 걸려 있다. 옐레나로 분한 소희는 목까지 덮힌 긴 하얀 색의 원피스 치마를 입고 서성이고 있다.
- 준비되면 시작하세요! 교육자가 노트를 바라보며 말한다.

- 소희는 잠시 서성이다 문 쪽으로 다가간다. 문 밖을 잠시 쳐다보던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거울 쪽으로 다가가 옷매무새를 고친다. 오른쪽 문으로 아스트로프로 분한 승욱 등장. 그는 넥타이를 맨 말쑥한 차림이고, 왼손에 그림통을 들고 있다. 승욱은 ‘안녕하세요!’ 라고 말한 뒤, 그녀 쪽으로 다가가 악수를 청하 듯 손을 내밀며 ‘제 그림을 보고 싶어 하신다구요?’ 라고 말한다. 옐레나는 가볍게 손을 잡고 ‘어제 작품을 보여주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시간 있으세요?’ 라고 말한 뒤 손을 뺀다. 승욱의 아스트로프는 ‘오, 물론입니다’ 라고 말하고, 그림통 속의 도면을 꺼내 탁자 위에 그것을 핀으로 고정시키며 ‘고향이 어디세요?’ 라고 묻는다.

옐레나는 그를 도우며 ‘뻬쩨르부르그요’ 라고 대답한다. 아스트로프는 계속 핀으로 고정시키며 ‘그러면 학교는요?’ 라고 묻자, 옐레나는 ‘음악원을 나왔죠’ 라고 대답한다. 도면을 책상 위에 고정시킨 후, 아스트로프는 ‘그럼, 이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라고 말하자, ‘왜요? 사실, 전 시골을 잘 모르지만 많은 걸 읽었어요’ 라고 옐레나는 되받는다. 그러자 승욱의 아스트로프는 ‘여기 이 집에는 내 전용 탁자가 있어요..... 이반 뻬트로비치 방에요. 너무 피곤해 머리가 둔해질 정도가 되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이리로 달려와, 한 두 시간 이걸로 기분을 풀죠..... 이반 뻬뜨로비치와 소냐 알렉산드로브나는 주판을 튕기고, 난 그들 옆에 있는 제 탁자에 앉아 서툴게 그림을 그리면 아늑하고 평온해지죠, 귀뚜라미도 울고요. 하지만 이런 즐거움을 자주 누리지는 못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러죠..... (도면을 가리키며) 자 여기를 보세요.’
- 선생님, 여기까지 준비했습니다. 승욱은 머리를 긁적인다.
- 수고하셨어요. 소희와 승욱의 의상은 의상실에서 구했나요? 교육자가 그들을 쳐다보며 묻는다.
- 네. 그들은 짧게 대답한다.

- <바냐삼촌>을 끝까지 정독했나요? 교육자가 다시 그들에게 묻자, 그들은 ‘네!’라고 재빨리 대답한다.
- 그러면 그들의 관계에 대해 간단하게 얘기해 주세요.
- ..... 옐레나는 오래전부터 그를 알아왔고, 아스트로프의 행동거지를 면밀히 주시할 정도로 그를 흠모하고 동경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다른 러시아 남자와는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일을 하는 남자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소희가 잠시 생각한 뒤에 빠르게 말을 한다.
- 아스트로프는요?
- ..... 저 또한 옐레나를 오래전부터 지켜 봐왔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그렇지만 일을 하지 않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혐오스러워 합니다. 승욱도 잠시 생각하다가 빠르게 말을 잇는다.

- 교육자는 그들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현재까지 이해하고 있는 옐레나의 하루 일과에 대해 간단히 얘기해 주세요.’ 라고 말하며 소희를 쳐다본다.
- ..... 그녀의 하루일과에 대해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진 않았습니다만, 뚜렷하게 하는 일없이 차 마시고, 산책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식사하고, 책 읽고, 치장하고 등일 것 같은데요.
- 오케이, 아스트로프는요? 이번에는 승욱을 향해 묻는다.

- ..... 저 또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진료를 하거나, 자신이 산에 심어 놓은 묘목들을 보러 가거나..... 음, 가끔씩 술을 마시거나, 세레브랴꼬프를 찾아 보거나, 아, 지도를 그리거나 할 것 같습니다. 승욱은 천천히 생각하며 말을 잇는다.
- 오케이! 장면의 시작부분에서 옐레나의 전상황과 그녀의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는 소희가 보여준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아스트로프의 전상황과 여기로 와야 하는 정당성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가는데? 교육자가 승욱을 쳐다보며 묻는다.

- 소냐가 저한테 와서 옐레나가 전에부터 말해왔던 도면을 보여주었으면 한다고 해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승욱은 마치 준비되어 있던 연설문을 읽듯 또박또박 대답한다.
- 아니, 그건 피상적인 이유에 불과해. 자네의 말처럼, 아스트로프가 옐레나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있다면, 도면은 수단이나 핑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정작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지 않을까? 아무도 없는 이곳에 옐레나와 단 둘이 있다면 아스트로프의 목표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여자가 나를 이리로 부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네의 첫 대사, ‘안녕하세요!’는 지금처럼 단순한 인사가 아닐 것이고, 만일 그와 같은 목표, 즉 옐레나가 나를 여기로 부른 이유를 알아내는 일이라면, 이 여자를 살피는 것이 첫 번째 행동의 계획으로 자리 잡아야겠지. 그리고 난 후, ‘악수를 청한다’ 라는 행동은 옐레나의 ‘어제 작품을 보여주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라는 대사 뒤의 ‘말없음’과 직결되는 상호행동으로 작동해야 되는데, 소희는 그냥 ‘손을 뺀다’ 라는 단순한 움직임만 수행할 뿐이었지. 만일 아스트로프가 자신의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악수’의 행동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냈다면, 옐레나의 ‘손을 뺀다’ 라는 행동은 보다 적합한 무대적 행동으로 변했을 지도 모르지. 다시 말하면, 나의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이 미약했거나, 없었기에 상대배우와의 목표로서의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

이 후에 나의 전략을 위한 전술은 다시 ‘도면을 보여준다’로 급선회하게 되는 것이지. 왜냐하면 도면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이 그녀와의 편리한 의사소통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아스트로프인 승욱은 옐레나의 ‘음악원을 졸업했다’ 라는 말을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이미 결정했어야 해. 만일 이 자리에서 그녀의 뻬쩨르부르그 음악원 졸업 사실을 알았다면, 자네에겐 사건으로서 평가의 시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해 ‘이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실 겁니다’ 라는 대사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기호에 다름없었지. 그렇다면 이 대사는 말행동으로서의 자격상실이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이후의 옐레나의 대사, ‘왜요? 사실, 전 시골을 잘 모르지만 많은 걸 읽었어요’ 라는 대사는 이 대화에 지기 싫어하거나 자기 방어인 셈이지. 음..... 말이란 이처럼 명확하고도 정확한 순서를 가지고 있는데, 그건 곧 대상인 상대배우, 파트너로부터 생성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파트너의 모든 것, 즉 말, 행동, 분위기 등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올바로 받아들일 수 없으면 아직까진 글이라고 밖에 할 수 없지. 이후에도 아스트로프의 장문의 대사 중에는 세 번의 ‘말없음’, 즉 ‘.....’이 등장하는데, 이것들도 몽땅 행동으로 바꾸어 놓아야 해. 행동은 대상으로부터 탄생하는 것인데, 자네가 방금 보여준 ‘.....’은 지극히 단순한 글자 그대로의 ‘말없음’이 되어버렸다네, 그것은 구체적인 대상이 없었다는 것으로 결론나지. 또한 아스트로프의 독백의 시작부터 옐레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지를 선택하고, 결정하여 행동으로 실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희는 그저 ‘듣고’ 있을 뿐이었지.

- 현정은 눈을 끔벅거린다.
- 잠시 쉬었다 할까? 교육자는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 네!! 우렁찬 목소리다.           

2013. 08. 05.

연기과 박 상 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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