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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7-08 10:39
[월/칼럼] 박상하 교수의 연기 컬럼 - 역할로 들어가자!
아흔 다섯 번째 이야기 - 장면연극 9
....................................................................박 상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교수)

- 무대 중앙에는 작은 사각 탁자와 낡은 등받이 의자가 놓여 있다. 탁자위에는 서류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옆에 주전자, 컵이 작은 쟁반에 담겨 있다. 중앙 뒤쪽으로 출입구가 있으며, 양쪽 옆으로 박스로 만든 번호가 찍혀 있는 상자가 수없이 쌓여 있다. 양쪽 상자 앞에 자앙과 기임의 침대로 보이는 접이식 침대가 있고, 다링은 술이 잔뜩 취해 꼬꾸라져 있는 기임의 발밑에 서 있다. 교육자가 들어와 자리에 앉자, 짧은 치마와 풀어 헤친 브라우스를 배꼽근처에서 질끈 맨 차림의 소희가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말한다. 자앙역의 무신은 자신의 침대에서 빨래를 개고 있다.
- 준비되면 시작하세요! 교육자가 짧게 대답한다.

- 잠시 호흡을 고른 뒤, 다링역의 소희는 누워 있는 기임의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는 담요로 기임을 덮어준다. 자신의 할 일을 다 하고 침대에 앉아 다리를 쭉 뻗고 자앙을 쳐다본다. “무슨 남자가 그래요?” 다링의 말에 자앙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본다. “네?” 라고 그는 반문한다. “술 몇 병 마시고는 이 사람 정신이 나가버렸어요!” 라고 그녀는 재빨리 답하고, 자앙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에게 손을 쭉 뻗어 “나, 미스 다링이에요. 미, 스, 다, 링!” 이라고 활기차게 말한다. 자앙은 엉거주춤 일어서며 그녀의 손을 어렵게 잡고서 “아, 그러세요..... 말씀은 들었죠.” 라고 말하고는 황급히 자리를 뜬다. 다링역의 소희는 빠르게 침대에 앉으며 “미스 다링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라고 큰 소리로 말하자, 자앙역의 무신은 뒤돌아선다. “사랑스런 여자다, 그런 뜻이에요!” 그녀는 자앙을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그리고는 자앙의 침대에 훌러덩 드러눕자, 자앙은 기임 쪽으로 급히 간다. 그녀는 누워서 “찬 물 한 잔 주시겠어요?” 라고 외친다. 자앙은 잠시 멈추는 듯 하다가 밖으로 나간다.

다링은 누워서 콧노래를 부른다. “여기 있습니다.” 자앙은 누워있는 다링을 쳐다보지 않고 물 잔을 내밀며 말한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물 잔을 받아 벌컥벌컥 마신다. 자앙은 사각 탁자 쪽에서 서류를 뒤적이며 “오늘은 술집 대신 음식점으로 가라고 했는데.....”라며 말을 흐린다. 그녀는 자앙의 말을 가로채며 재빨리 말한다. “그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나요. 저 남자는요, 창고 속에서 사는 건 싫증이 났대요. 하루 종일 상자 따위나 들여오고 내보내자니 지겨워 죽겠다면서.” 잠시 말을 끊더니 그녀는 자앙 쪽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다면서요? 언제나 성실하고 정확해서, 단 하나의 상자도 틀리지 않는다죠?” 다링은 서류를 들고 있는 자앙의 뒤에서 나지막하면서도 유혹하듯 천천히 말한다. 무신은 상자 쪽으로 급히 자리를 옮긴다. 다링 또한 자앙을 따라 움직여 그의 앞에 선다. 그리고는 손을 쭉 뻗어 스타카토식으로 말한다. “나, 미스 다링이에요. 미. 스. 다. 링!” 무신은 다른 상자더미가 쌓여 있는 쪽으로 급히 돌아선다. “아참, 그랬었죠!” 그녀가 손을 뒤로 하고 말한다. 자앙은 상자와 서류를 번갈아 보며 “이 늦은 밤에..... 데려다 드릴까요?” 라고 말하자, “우리 집이 어딘지 아세요?” 라고 다링은 재빠르게 되묻는다. “아뇨, 하지만 가르쳐주시면.....”

여전히 상자와 서류를 쳐다보며 자앙이 대답하자, “걱정마세요. 조금 있으면 술이 깰 거예요.” 라고 다링은 대답하며 조금 비틀거린다. 자앙역의 무신은 서류를 사각 탁자위에 놓고서는 의자를 잡는다. “그럼 잠깐 앉으시죠.” 그녀가 그를 쳐다보자, 자앙은 고개를 떨군다. 다링은 의자로 다가가 앉는다. “고마워요.” 그리고는 창고 안을 휘익 둘러본다.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 있던 자앙은 “전등을 켤까요? 전등을 켜면 환해집니다.” 라고 말한다. 다링은 고개를 흔들며 “물 한 잔 더 주시겠어요?” 라고 말하며 물 잔을 어깨 높이로 들어 흔든다. 자앙이 다링에게 물 잔을 잡기 위해 다가온다. 자앙은 다링의 풀어 헤쳐진 상의 때문에 고개를 돌리고서 물 잔을 잡으려한다. 그러자 다링은 물 잔을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온다. 자앙이 물 잔을 잡기 위해 다링을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린다. 다링은 물 잔을 탁자위에 놓고 자앙이 보기 좋은 위치로 옮겨 탁자위에 앉는다. 그리고는 치마를 무릎과 허벅지쪽으로 당긴다. 자앙은 잠시 주시하다가 이내 침대쪽으로 피한다.

- 여기까지 준비했습니다. 소희는 겸연쩍은 미소를 짓고 재빨리 의자에 앉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 학생들이 ‘우’하며 소리친다.
- 수고했어요! 교육자가 화답한다. 여러분이 선택한 장면은 총 몇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나요?
- 총 2단락이고, 1단락은 다시 3단위로 나누었습니다. 저희들이 오늘 시연한 것은 1단락이었습니다. 무신은 자앙의 침대에 앉으며 교육자에게 답한다.
- 승욱은 자나요? 기임역을 도와준 승욱은 급히 일어나 머리를 벅벅 만지며 밖으로 나온다. 학생들은 ‘와’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 자앙의 일대기에 대해 간단하게 말해보세요, 무신! 교육자가 무신을 쳐다보며 묻는다.
- 어릴 때 고아원에서 자랐으며, 청년이 되어 독립하여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트럭운전수 중 맘씨 좋은 아저씨를 만나 지금의 창고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창고지기 선배가 다른 창고로 옮기는 바람에 이곳을 맡게 되어 근 20여 년 동안 여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다링의 일대기는요? 교육자가 소희를 쳐다본다.
- 뜨내기이자 트럭운전사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부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생활했습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일을 했습니다. 지금의 다방에서는 3년 전부터 다방아가씨로 일을 하고 있으며, 커피나 차를 배달하다가 가끔씩 돈이 되는 손님을 만나 연애도 합니다.

- 인물형상을 위한 구축작업은 지난 번 에튜드를 보여줬을 때보다 한층 공고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속적으로 관찰하여 몸을 바꾸어 보세요. 무엇보다도 흥미롭고도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면, 둘 간의 교류였습니다. 그만큼 주고받기가 상대배우로부터 출발하여 매우 명확하게 보고 듣는 과정을 거쳐 자신의 행동으로 파트너에게 영향을 올바르게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교류작업으로서의 전형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것은 곧 ‘나의 행동은 파트너의 행동으로부터 출발한다.’ 라는 공식을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말 또한 상대배우의 분위기, 몸짓, 말 등으로 말미암아 생성되고 있어서 정확한 행동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대에서의 포지션, 이동(선), 자세, 태도 등도 연출이라는 특별한 역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찾아진 것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다링의 기임에게 다가감은 자앙에게 있어서 이 자리를 뜨게끔 만들고 싶지만, 다링의 전면에서의 가로막음은 자앙에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몸의 형상을 만들고 있으며, 다링에게는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목표가 달리 있는 것이어서 자앙의 면전에 서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로 다른 목표의 충돌은 우리들로 하여금 주의를 지속적으로 갖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숨을 죽이며 여러분을 보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인 관객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우리의 최종 목표인 관객과의 교류는 결국 무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행하느냐하는 문제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물어보고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여러분의 행동플랜이 시연 때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요? 교육자가 소희와 무신을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 큰 차이는 없었지만, 시연 때 자연스럽게 수정되거나 보완된 부분은 더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요. 소희가 대답한다.
- 예를 들면요? 교육자가 다시 소희에게 묻는다.
- 음.....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다면서요?’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저희들의 행동계획은 자앙에게 직접적으로 이 말로 영향을 주기 위해 전면까지 가는 것이었는데, 걸어가면서 이미 저와 무신은 어떤 공기를 주고받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그래서 대여섯 걸음 후에 이미 저한테는 이 말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을 인지하여 자앙의 뒤에서 대사를 했습니다. 이때 분명히 느낀 것은, 저의 이러한 위치와 형태에서 터져 나온 말은 자앙으로 하여금 자극을 주고있음을 확신했습니다. 무신 또한 저의 이 말로 인해 속행동을 시작했음을 간파했습니다. 소희는 무신을 쳐다본다.

- 무신은 대답대신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 나 또한 소희가 무신 쪽으로 걸어갈 때, 이 침묵의 순간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의 주의력을 가졌던 것 같군. 무언의 힘이지. 오케이! 두 사람은 다음  번에 2단락 끝까지 보여주도록!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교육자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 학생들은 교육자가 나가든 말든 아랑곳 하지 않고 파트너와 이야기를 나눈다.             

2013. 07. 08.

연기과 박 상 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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