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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4-08 16:06
[월/칼럼] 박상하 교수의 연기 컬럼 - 역할로 들어가자!
여든두 번째 이야기 - 문학작품 인물 에튜드 13
....................................................................박 상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교수)

- 수업이 시작되자 교육자가 실기실에 들어온다. “준비되었나요, 현정과 문숙?”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말한다.
- 네! 현정과 문숙은 동시에 대답한다. 무대는 3면을 가림막으로 쳐서 외벽으로 만들어 놓았고, 왼쪽 구석에는 허름한 자개농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오른쪽 앞에는 밥상으로 보이는 조그만 상이 보자기에 덮여 있다. 문가에는  뚜껑으로 덮혀진 사기로 만든 오강이 얌전히 놓여 있다. 경기댁인 현정은 낡은 군청색의 이불 속에 누워 있다. 잠시 후, 가슴을 불룩하게 만든 미선 역의 문숙이 수건을 목에 걸치고 들어온다. 그녀는 잠자고 있는 듯한 어머니인 경기댁을 힐끗 쳐다보고는 자개농을 연다. 옷가지들을 꺼내어 농 위에 가지런히 놓고 다시 경기댁을 슬쩍 쳐다본다.

- 안 잘 거니? 자고 있던 경기댁이 나지막하게 말한다.
- 내일 교회입고 갈 옷들을 챙겨 놓고 자려고요. 미선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한다.
- 어서 자! 경기댁은 자리를 돌아누우며 미선에게 말한다.
- 네, 어서 주무세요. 미선은 밥상 보자기를 들춰 보면서 대답한다. 미선은 다시 보자기를 덮고 농 위에 있는 사각형 모양의 로션을 한 움큼 찍어 얼굴과 손에 바른다.
- 오빠는.....? 미선은 경기댁의 뒤에 앉아 얼굴을 로션으로 비비며 말한다.
- .....
- 오빠는 늦는 모양이죠? 미선은 손을 로션으로 문지르며 재차 묻는다.
- 갑자기 경기댁이 벌떡 일어나 앉는다.
- 왜 그래, 또? 미선은 여전히 자신의 일을 하며 퉁명스럽게 소리친다.
- 경기댁은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 어디 가요? 미선은 농으로 가서 내일 입고 갈 옷가지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한다.
- 잠시 후, 경기댁은 허리춤을 챙기며 들어와서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 변소 갔다 왔어? 그냥 오강에다 누지, 밤에 뭐하러.....
- 경기댁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미선을 쳐다본다.
- 오늘 무슨 일 있었수? 미선은 이부자리로 들어가며 묻는다.
- 오늘 아침에 마당 깊은 집 사람들이 다 나가고 노마님이 지나가는 말로 나한테..... 성준이 아버지가 달세를 올렸으면 한다고 언질을 하더라, 미선아. 그리고 김천댁이 살고 있는 바깥채를 헐어서 수린가 뭔가 해서 그쪽도 달세를 놓겠다는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미선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대뜸 한마디 한다.

- 아니, 지난번에도 은근 슬쩍 달세를 올려야겠느니 하면서 돼지 같은 주인마누라가 사람 복장을 들쑤셔 놓더니, 원, 참!
- 미선은 어머니에게 다가가 앉으며 “자초지종 얘기해 보세요. 노마님이 뭐라 했는지!” 묻는다.
- 아, 글쎄, 아침에 설거지나 해볼 요량으로 마당에 그릇들을 내놓고 있는데 위채 노마님이 슬쩍 다가오더니 ‘아이구, 요새 홍규 총각 치과 병원일은 잘 굴러 가남?’ 하고 뜬금없이 묻질 않겠냐? 그래서 노마님이 이빨이 시원찮은가 하고 생각했지. 그러더니 ‘성준이 아부지 면방직 공장이 팍팍혀. 짱구하고 똘똘이 공부시키기도 힘들구먼..... 해서 성준이 아부지가 아래채하고 바깥채 달세를 이제 좀 올렸으면 하더라고. 경기댁,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노?’ 하고 묻더라고. 경기댁은 열을 내가며 아침의 일을 설명한다.

- 미선은 어머니 말을 다 듣고 나서 생각에 잠긴다.
- 이번에는 단단히 벼른 모양인데, 어떡하면 좋냐, 미선아? 경기댁은 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 내일 아침에 교회 갔다 와서, 엄마..... 준호아버지를 한번 만나서 얘기를 해 봐야겠어요. 아, 길남이 어머니한테도 얘기해 봐야겠어요. 엄마, 내가 준호아버지와 길남이 어머니 만나서 얘기해 보기 전까지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괜히 또 동네방네 들쑤시지 말고요, 아시겠어요?
- 내가 뭘 쑤신다고 그러냐? 경기댁은 발끈한다.
- 아, 지난번에도 식모 안씨한테 길남이 부엌에서 밥 훔쳐갔다고 얘기해 가지고 온 집안을 들쑤셔 놓았잖아요? 그것 땜에 길남이 어머니한테 길남이 얼마나 호되게 맞았는데! 제발, 남의 일에 참견 좀 그만해요, 좀! 미선은 목소리를 높인다.

- 아니,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난 말도 못 하냐? 가시내가 말하는 것 하고는.
- 그것 뿐이유, 준호아버지 다방에서 치약판다는 얘기는 노마님한테 왜 해가지고는.....
- 야, 그것도 내 눈으로 똑바로 본걸 얘기했을 뿐이야! 동성로 근처 다방으로 준호아버지가 들어가는 걸 봤다니까, 가시내가!
- 남이사 공책을 팔든 사령부로 가든 무슨 상관이요. 입에 풀칠하기도 하기 바쁜 세상에! 암튼 노마님이 말한 거 내가 준호아버지와 길남이 어머니하고 얘기 전까지는 절대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마세요. 특히 평양댁 아줌마한테는! 난리나요, 난리!
- 말 안하면 될 것 아냐! 경기댁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눕는다.
- 미선도 불을 끄고 자리에 눕는다.
- 수고했어요! 불 켜세요.

- 현정과 문숙이 보여준 에튜드, <늦은 밤에>는 몇 가지 점에서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우선 미선 역할인 문숙의 전상황과 어머니 경기댁 역할의 현정의 전상황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난 후의 행동계획 또한 구체적으로 해 내고 있습니다. 오빠 홍규를 위한 밥상과 오강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상황을 우리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드는 훌륭한 행동 도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둘 간의 사건은 제법 정확하게 부딪혀 지금, 여기에서 자신들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연히 평가에 대한 정도나 크기 또한 명확하게 소유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말의 계획은 꽤 장황함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것들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그것은 현재에서 상대배우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듣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자신의 목표달성을 위한 행동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현정과 문숙의 에튜드가 나무랄 데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문학작품 인물 에튜드>는 역할로 접근하기 위한 두 번 째 과정입니다. 첫 번째 과정은 몸을 바꾸는 관찰 작업이었으며, 두 번째 과정은 희곡이 아닌 문학작품에서 인물을 선별해 인물형상 에튜드 작업 그것입니다. 짐작하겠지만, 이후에 우리는 희곡이라는 텍스트를 가지고 역할작업을 할 것입니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역할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단, 자신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텍스트를 근거로 인물임직한 사람의 외형을 관찰하여 자신의 몸에 붙여 행동으로 옮겨 낸다면, 그리고 텍스트를 근거로 인물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결정하여 행동으로 옮겨 낸다면 자신인지 역할인지 모를 그 어떤 모호한 경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담하게, 용감하게, 순진하게 해 내십시오! 뒤를 돌아 볼 필요도 없고, 앞을 생각할 필요는 더 더욱 없습니다. 오직 이 순간을 즐기고 해 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에튜드가 끝난 후에  파트너와 다시 생각하고 평가해 보라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현정과 문숙의 <늦은 밤에>는 흥미로운 에튜드였습니다. 자, 다음 주에 <문학작품 인물 에튜드>를 공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공개 발표 리스트는 다음 시간 수업이 끝난 후에 소희를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 학생들은 웅성거린다.

2013. 04. 08.

연기과 박 상 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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