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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4-01 15:54
[월/칼럼] 박상하 교수의 연기 컬럼 - 역할로 들어가자!
여든한 번째 이야기 - 문학작품 인물 에튜드 12
....................................................................박 상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교수)

- 10분간의 휴식 후, 교육자가 들어와 책상에 앉는다. “소희와 승욱은 준비되었나요?” 교육자가 말하자, 평상에 앉아 있는 소희가 대답한다. “네, 준비되면 시작하겠습니다!”
- 무대는 가림막으로 두 면을 막아 외벽으로 만들고, 뒤쪽 중앙으로 계단이 놓여 있다. 무대 중앙에는 커다란 평상이 놓여 있고, 어머니 역할의 소희가 앉아서 빨래를 개고 있다. 소희는 짙은 고동색의 몸빼 바지와 낡은 모시 상의를 입고 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색깔이 바랜 비녀로 위로 틀어 올렸다. 평상 아래에는 검정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무대 왼쪽의 기다란 벤치위에는 제법 큰 보따리가 묶인 채 놓여 있다. 무대 오른쪽의 위채에서 음악소리가 크게 흘러나온다. 소희는 아랑곳 하지 않고 찢어진 면수건과 구멍 뚫린 군용 양말, 모시 옷 등을 차례차례 갠다. 음악소리가 절정에 다다르면 위채에서 성준의 노래 부르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소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위채를 힐끗 보고는 다시 빨랫감을 빠르게 갠다. 음악소리와 노래 소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마침내 소희가 벌떡 일어서서 위채로 다가간다. “성준총각!” 어머니인 소희가 음악소리를 뚫고 큰 소리로 부른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전보다 더 큰 소리로 부른다. “성-준-총-각!” 노래 소리가 멈추고 음악소리도 작게 흐른다. 이윽고 방에서 성준이 나온다. 그는 머리에 포마드 기름을 잔뜩 칠하고 보기 좋게 이대 팔 가르마를 타고 노래 가락을 흥얼거리면서 어슬렁어슬렁 등장한다. 그는 초록색 기지바지와 분홍 꽃무늬가 얼기설기 섞인 와이셔츠를 입고 있다. “와예?” 성준으로 분한 승욱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소희는 성준을 쳐다보는 둥 마는 둥 “소리 좀 줄이소. 혼자 사능교!” 라고 한마디 하고 다시 평상으로 되돌아간다. 성준인 승욱은 잠시 소희를 쳐다보고는 다시 사라진다. 음악소리가 다시 흘러나오지만 아까보다는 약간 작아진 듯하다. 소희는 개고 있던 구멍 뚫린 양말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잠시 생각하다가 그녀는 고무신을 신고 위채로 다가간다.

- 성준총각! 좀 보입시더! 소희는 아까보다는 확실히 크게 외친다.
- 잠시 후, 승욱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나온다. 음악소리는 여전하다.
- 와 자꾸 사람을 나오라 마라 합니꺼! 승욱의 목소리도 카랑카랑하다.
- 소희는 위채 마루에 앉으며 손짓으로 앉으라고 한다. 승욱은 서 있다.
- 앉아 보이소. 성준총각! 소희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다부지다.
- 잠시 서 있던 승욱은 떨썩 주저앉는다.

- 핵교다니먼 피곤하겠지예, 암니더. 그치만 아래채에도 사람들이 살고 안 있슴니꺼. 핵교에서도 고성방가 함니꺼? 안 하지예? 와 그렇슴니꺼? 핵교에도 학생들이 안 있슴니꺼. 그렇지예? 누가 노래 부르지 마라 함니꺼? 아래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작게 부르면 된다 아임니꺼. 안 그렇슴니꺼! 소희는 승욱을 빤히 쳐다 보고 바닥을 또박또박 쳐가며 차근차근 말한다.
- 아따, 길남이 어무이, 핵교 선생해도 되겠네예! 성준은 소희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대뜸 말한다.
- 뭐라고예? 소희는 눈에 살짝 힘을 주고 즉각 응수한다.

- 오늘 오전 수업이 없어서 집에 좀 있다 나갈라고 했는데, 뭐가 잘못 됐심니꺼? 그라고 보통 이맘때 쯤이먼 일보러 다 나간다 아임니꺼? 길남이 어무이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내가 맨날 확인해야 함니꺼? 성준은 여전히 껌을 짝짝 씹으며 대꾸한다.
- 그래, 일보러 나가야 하는데, 안 나간 내가 잘못했네예! 소희는 한숨을 내쉬고 승욱을 쳐다본다. 승욱이 일어서려 하자, 소희가 다시 그를 부른다. 그는 일어서다말고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다.

- 성준총각! 내 하나만 부탁하입시더.
- 뭡니꺼? 말하이소! 승욱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조금 긴장하는 듯하다.
- 요 며칠 전에 길남이한테 돈도 안주고 극장표 사오라고 했다면서예! 그라고 또 일전에 길남이더러 편지쪽지인지 뭔지 자유극장 옆에 사는 정씨 아지매한테 전해주라고 했다면서예! 소희가 승욱을 은근히 쳐다보며 말한다.
- 승욱은 껌 씹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 앉아 보이소, 성준총각!
- 승욱은 일어선 자세로 가만히 서 있다가 천천히 앉는다.
- 아부지는 암니꺼? 정씨 아지매하고 장남하고 나이트 가는 거예? 소희는 승욱을 계속 은근히 쳐다보며 말을 잇는다.

- 승욱은 꼼짝 않고 소희의 말을 듣고 있다.
- 길남이한테 한번만 더 고런 일 시키면 어무이 가게 보금당으로 찾아가도 됨니꺼?
- 승욱은 고개를 빨리 가로젓는다.
- 길남이한테 인자 심부름 안시키겠슴니더. 아부지한테는 절대로 말하지 마이소, 알겠슴니꺼? 승욱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희에게 조용히 말한다. 그리고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간다. 소희는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 평상으로 가서 빨랫감을 챙겨 방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머리에 수건을 받치고 큰 보따리를 얹어 계단을 넘어 나간다. 음악소리는 완연히 낮다.
- 수고했어요! 나오세요. 교육자가 외친다.
- 소희와 승욱은 평상에 들어와서 평상에 나란히 앉는다.

- 어머니인 소희와 성준 역의 승욱의 전상황, 목표, 사건과 평가로 인한 행동찾기와 말행동은 지금, 여기에서 수행된 듯합니다. 그리고 에튜드에서 둘의 관계 또한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내가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소희가 더 이상 시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성준을 재차 불러내어 위협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소희의 위협적인 말은 정확하게 승욱으로 하여금 사건으로 작용하여 그를 생각하게 만들고 있었고, 승욱의 그 다음 행동, 즉 슬쩍 자리를 뜨고자 일어서는 것은 적절하게 찾아진 행동이었습니다. 또한 이 후 소희의 다시 앉으라는 말과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아내고야 마는 소희의 목표가 말로 전달되는 것 또한 분명 승욱으로 하여금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 승욱은 이러한 자신의 사건을 정확히 평가하여 자신의 목표를 수정하게 되고, 계획된 말로 매우 정확하게 소희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교육자의 말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 또 한 가지 재미있었던 부분은 끝 장면에서 소희의 목표가 음악의 줄어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극작가나 연출의 등장을 보는 듯했는데, 어떤 경우에는 이와 같은 처리 방식이 에튜드의 구조나 기술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전락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보여준 소희와 승욱의 에튜드에서는 보이지 않는 승욱의 행동으로 명확하게 해결된 듯합니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에튜드 작업은 우리로 하여금 여러 가지 기능을 해결하도록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극작가로서, 무대미술가로서, 연출로서 그리고 최종적으로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로서의 역할을 강화시켜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방금 보여준 <충고> 에튜드는 이미 여러분이 에튜드의 다양한 성과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에튜드였어요! 다음 에튜드를 볼까요?

- 무대를 바꾸어야 하는데..... 선생님. 현정이 교육자를 쳐다보며 말한다.
- 오케이, 다음 시간에 보여주세요. 교육자가 시계를 쳐다보며 말한다.
         
2013. 04. 01.

연기과 박 상 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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