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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3-18 12:00
[월/칼럼] 박상하 교수의 연기 컬럼 - 역할로 들어가지 !!
일흔아홉 번째 이야기 - 문학작품 인물 에튜드 10 !
....................................................................박 상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교수)

- 가림막을 이용하여 외벽으로 만들고, 무대 중앙에는 사각 탁자와 팔걸이의자가 몇 개 놓여있다. 탁자 위에는 미군용 포마드 기름용 병, 낡은 중절모, 양말 등이 널려 있다. 왼쪽 외벽에는 네모 반듯한 크지 않은 거울이 걸려있고, 그 밑에는 축음기 한 대가 대중가요 소리를 내뿜고 있다. 성준은 흥얼거리며 거울을 보고 머리에 포마드 기름칠을 하고 있다. 노래의 리듬에 맞춰 상체와 다리도 흔들거린다. 그는 휘파람을 불며 탁자에 앉는다. 당시로는  구하기 힘든 면양말을 부드럽게 만지며 턴다. 발가락을 꼬물거리며 면양말 속으로 집어넣고 다른 쪽도 똑같은 방식으로 신는다. 그는 다시 일어서서 거울 쪽으로 다가가 옷매무새를 활기차게 고치고 머리를 쭉 내밀어 입술을 쫙 펼쳐 이빨을 점검한다. 목을 오른쪽과 왼쪽으로 천천히 돌리며 눈곱을 떼는 동작과 머리카락을 보기 좋게 쓸어 넘긴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중절모를 머리 위에 얹고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앞뒤로 발걸음을 옮겨 가며 본다. 상체를 흔들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간다. 이내 그는 뒤를 힐끗 힐끗 보며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손에는 컵을 들고 있다. 살며시 탁자 쪽으로 다가와 팔걸이의자에 앉는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천천히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맡긴다. 천천히 일어서서 문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간다. 목을 쭉 빼고 문 밖을 내다본다. 앞발바닥을 세우고는 천천히 밖으로 나간다. 여기까지입니다. 승욱은 가림막 뒤에서 소리친다.

- 들어오세요. 교육자가 가림막 뒤의 승욱을 향해 말한다.
- 승욱은 머리를 긁으며 들어와 의자에 앉는다.
- 현재까지 이해하고 있는 대학생 성준에 대해 이야기 해 주세요. 교육자가 승욱을 바라보며 묻는다.
- 저는 현재 21살입니다. 일제시대 때 소학교를 제때 다니지 못해 1년을 쉬었습니다. 지금은 대구 시내에 있는 사립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근데 공부에는 취미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대학도 보결로 입학했습니다. 물론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돈을 쓰서 입학을 하게 되었구요. 학교는 매일 등교하지만, 가방에는 소설책이나 미군잡지만 가득 있을 뿐입니다. 대충 수업을 하고는 시내 동성로에 있는 송죽극장이나 자유극장을 찾는 일이 저의 중요한 일과입니다. 카바레 가는 일 또한 밥 먹는 일보다 더 중요합니다, 저에게는.

- 승욱이 너다! 기주가 농담조로 한마디 하자, 다른 학생들은 동의하는 듯한 웃음을 터뜨린다.
- 계속하세요! 교육자도 미소 지으며 말한다.
- 텍스트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만, 돈 좀 있는 아주머니들도 만나서 데이트하기도 하구요. 아뭏는 저의 모든 관심사는 여자들입니다.
- 역할이 필요 없다! 문숙과 주희도 큰 소리로 외친다.
- 전상황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목표에 대해 말해 주세요. 교육자가 학생들의 농담 섞인 야유를 뚫고 승욱한테 재차 묻는다.

- 오늘은 수업이 없는 날입니다. 나는 어제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극장과 다방을 전전하다가 밤늦게 까지 술을 퍼 마셨습니다, 물론 여자들과 함께요. 지금은 오후 3시 쯤 되었고, 약속시간은 4시에 장관동의 어느 제과점에서 아버지 조카이며 현재는 저희 집에서 기거하고 있는 고등학생 동희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동희는 몸매 좋고 얼굴이 제법 빤빤한 여학생인데, 저하고는 오촌입니다. 동희는 일 년 전부터 저희 집에서 얹혀살며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평소에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고, 그녀 또한 저한테 조금의 관심이 있다는 것을 지레 짐작하고 있던 터라 며칠 전 그녀에게 빵을 사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녀를 만나기 위해 치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 이제는 친척 여학생까지 건드리냐? 기주가 큰 소리로 외친다.
- 해도 해도 너무하네! 수정이 볼멘 목소리로 외친다.
- 내가 아니고 성준이 그렇다고! 승욱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학생들의 야유를 되받아친다.
- 사건은 무엇입니까? 교육자가 재빨리 묻는다.
- 동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치장이 거의 끝날 무렵 물을 마시고 싶었습니다. 해서 부엌으로 나갔는데, 식모 안씨가 긴 생머리를 풀어 헤치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안씨는 수건으로 늘 머리를 감싸고 있어서 그녀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여자로 착각했을 정도였습니다. 묘한 느낌이었는데, 물 잔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잠시 생각하고는 그녀에게 말을 걸기 위해 다시 부엌으로 나섰습니다.

- 가지가지 하는구나! 이젠 식모까지! 너의 끝은 어디니? 소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한 제스처를 하며 궁시렁댄다. 다른 학생들은 승욱의 이야기를 듣고 박장대소를 하며 웃는다. 교육자 또한 웃음을 참지 못한다. 
- 성준한테 여자가 왜 이처럼 중요한지, 과거에 어떤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나요? 교육자는 웃음을 참으며 승욱한테 묻는다.

- 우선 제가 생각한 성준의 애정결핍과 같은 이와 같은 행동은 집안 사정상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바깥생활로 너무 바쁜 사람이어서 할머니께서 주로 저를 챙겨 주셨던 것 같습니다. 일례로, 부모님들은 자신들의 일로 무척 바빠 술을 거나하게 먹고 늦은 밤에 들어오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할머니께서 저를 토닥거리며 잠을 재워 주셨습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여자는 무척 신기하면서도 저를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몇 년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 왔는데, 옆집에 사는 고등학생 누나는 저한테 처음으로 이성에 눈을 뜨게 만들었습니다. 그 누나는 저한테 매사 무척 잘 대해 주었고, 심지어는 아무렇지도 않게 스킨쉽을 하기도 했습니다.

- 학생들은 승욱이 작성한 성준 학생의 여성관에 대해 이야기를 경청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 오케이, 승욱은 자신의 전상황, 목표, 전사(前史), 그리고 여성관 등을 이야기하며 한 가지 흥미로운 단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교육자는  대뜸 학생들을 쳐다보며 묻는다.
- ...
- 승욱은 성준 학생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 몇 번의 ‘나’ 혹은 ‘저’라는 단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기억해요?
- 네. 학생들은 잠시 후에 대답한다.

- 비교적 이른 시점이지만, 승욱은 이미 성준의 삶이 마치 자신의 삶처럼 이해되거나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텍스트를 정독하고, 시대와 공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 조사, 연구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역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졌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역할에 대한 이해도가 넓고 깊어진다면 분명 우리들에겐 좋은 일입니다. 이해되나요?
- 네! 학생들은 우렁차게 대답한다.

- 자, 다음 시간부턴 2인 에튜드로 들어가 볼까요? 파트너의 선택은 자유롭게 여러분이 정하길 바랍니다. 또한 처음에는 텍스트에 의존하여 여러분의 상황과 행동들을 찾아 실행해보고, 이후에 여러분의 상상력을 확대시켜 텍스트의 이면까지도 상황과 행동을 찾아 보여주길 바랍니다. 물론 말이 필요하다면 하세요. 그러나 전에도 말했지만, 말은 상황의 설명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오케이?
- 오케이! 학생들은 교육자의 말을 모방하여 큰 소리로 외친다.

2013. 03. 18.

연기과 박 상 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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