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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3-11 09:57
[월/칼럼] 박상하 교수의 연기 컬럼 - 역할로 들어가자!
일흔여덟 번째 이야기 - 문학작품 인물 에튜드 9
....................................................................박 상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교수)

- 무대는 가림막 5-6개를 활용하여 골목길을 만들어 놓았다. 왼편 가림막 끝에 작은 큐빅이 놓여 있고, 무신은 군모를 쓰고 군복을 입고 거기에 앉아서 오른손가락의 의수 사이로 담배를 끼워 피고 있다. 왼쪽 어깨는 약간 움츠리고 있고, 눈은 푹 눌러 쓴 군모 사이로 반짝 거리며 빛나고 있다. 준비되면 시작하겠습니다! 인물형상을 유지한 채 무신은 낮게 말한다.

- 네! 교육자가 화답한다.
- 그는 연신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가며 주시하고 담배를 피운다. 담배재가 거의 끝까지 다다르자 군화발로 끈다. 그리고 그는 일어서서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닌다. 그러나 상체는 빳빳하게 곧추 세우고 있다.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그는 오른쪽 맨 끝의 가림막 벽 근처로 가서 달라붙어 골목길을 주의 깊게 살핀다. 그리고는 다시 큐빅으로 와 앉는다. “왜 이리 안 나오는 게야?” 준호아버지인 무신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은 쉰 듯하지만 굵고 안정감 있다. 무신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큐빅 뒤의 가림막에 몸에 숨긴다. 잠시 후에 목을 조금 빼내 주위를 살피고는 급히 누군가를  쫓아가듯 급히 뒤따라간다.

- 준호아버지의 형상을 위한 관찰 작업은 계속되고 있나요? 교육자가 에튜드를 끝낸 무신에게 묻는다.
- 일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준호아버지의 형상을 위한 모델은 늑대로 잡고 있고, 동물원을 가보거나 영상을 통해 관찰을 했습니다. 특히 삼백근을 드러내고 있는 늑대의 눈은 준호아버지의 눈매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듯하여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가림막 뒤에서 나오며 무신은 대답한다. 그리고 의수사용법을 익히는 것이 쉽지가 않아 자투리 시간을 내어 몸에 붙이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 준호아버지의 세계관에 어울리는 말이나 단어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또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나 단어는 무엇입니까? 연기교육자는 빠르게 묻는다.
- 6.25전쟁에 참전한 장교이기에 ‘조국’이나 ‘동지’, ‘빨갱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할 듯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회주의적 단어나 말들, 예를 들면 ‘동무’, ‘인민’, ‘계급’ 등을 매우 싫어하거나 혐오스러워 할 듯합니다. 무신은 교육자의 질문에 이미 답안을 준비한 듯 거침없이 말한다.
- 보여준 에튜드의 전상황과 사건, 그리고 목표에 대해 이야기해 보세요. 교육자가 재차 무신에게 묻는다.

- 며칠 전 평양댁 장남인 정태 청년이 장관동 굴다리 근처에서 밀짚모자를 쓴 어떤 남자를 만난 것을 목격했습니다. 준호아버지는 그 남자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준호아버지가 빨갱이라 부르는 사람의 하수인이자 행동대원입니다. 그래서 정태 청년과 그 남자의 대화를 엿듣고 오늘 아침 정태 청년이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 약전골목의 어떤 집으로 방문하는 것을 미행했습니다. 지금은 근처 골목에서 그들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 엿들었던 내용은 무엇입니까?
- 마르크스 책에 관한 대화였습니다.
- 그럼, 준호아버지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 정태 청년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밀짚모자를 쓴 그 사람을 알게 된 경위와 마르크스 책의 입수경로, 그 책이 정태 청년에게 왜 필요한지 등에 대해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 말 것과 마르크스 책은 당국의 금지서이기에 주의를 주는 것입니다.

- 오케이, 하나만 더 물어볼까? 준호아버지의 본명과 의수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교육자는 무신이 제법 잘 만든 의수를 쳐다보며 묻는다.
- 텍스트에 의하면, 준호아버지는 박종모라는 실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을 멈추고 자신의 노트를 얼른 꺼낸다. 아, 소설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1951년 여름 비가 억수로 오는 칠흑 같은 밤, 금성전투에서 중공군 부대와 맞붙었을 때 부상을 당했다고 암시되어 있습니다.

- 당시 공산주의라 불리는 북한군과 중공군과의 참전 경험은 그로 하여금 어떤 세계관을 형성하기에 충분했을 겁니다. 그것은 곧 그가 ‘빨갱이’라고 부르는 집단과 조직에 대하여 혐오감을 가지게 만들었을 것이고, 또한 반드시 척결해야만 하는 대상이라는 생각을 가지게끔 만들었을 겁니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은 자신을 소위 철저한 우파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평양댁의 장남인 말라깽이 정태 청년이 당시의 좌파라 불리는 사람들과의 접촉과 그에 대한 서적의 탐닉은 필히 막아야만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평상시 그는 정태 청년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거나 주시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며칠 전 상이군인인 준호아버지는 평상시 주시하고 있던 정태 청년이 낯선 남자와 몰래 만나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 낯선 남자가 바로 좌파의 행동대원인 걸 알았다면 분명 그로서는 그냥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이러한 그의 역사와 전상황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신의 골목길에서 담배피움과 숨음, 살펴봄 등의 행동은 적합하고 분명하게 와 닿았습니다. 마당깊은 집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가능한가요, 무신? 교육자는 불쑥 묻는다.
- 텍스트를 근거로 그리고 상상력을 조금만 더 보탠다면 충분히 가능할 듯합니다. 무신은 큰 소리로 대답한다.
- 오케이, 성준의 에튜드를 봅시다!   

2013. 03. 11.

연기과 박 상 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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