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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3-04 10:31
[월/칼럼] 박상하 교수의 연기 컬럼 - 역할로 들어가자 !
일흔일곱 번째 이야기 - 문학작품 인물 에튜드 8
....................................................................박 상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교수)

- 연기실기실에 교육자가 들어온다. 그의 책상 위 노트에는 다음과 같은 순서가 적혀 있다.

1. 출근준비          미선(윤문숙)
2. 공원에서          준호아버지(감무신)
3. 방에서            성준(양승욱)
4. 시장통에서        어머니(이소희)
5. 부엌에서          식모 안씨(이수정)
6. 길거리에서        민이(손기주)
7. 사무실에서        주인아저씨(박정태)
8. 평상에서          경기댁(김현정)
9. 시장통에서        평양댁(권주희)
10. 다방에서        주인아주머니(이정하)

- 문숙, 준비되었나요? 연기교육자가 가림막 뒤에 대기하고 있는 문숙에게 소리친다.
- 잠깐만요, 선생님. 네, 준비되면 시작할게요! 가림막 뒤에서 문숙은 대답한다.
- 무대는 가림막을 이용하여 방을 꾸며 놓았다. 무대 뒤쪽에는 작은 장롱이 놓여있는데 반쯤 열려 있다. 장롱에는 이불, 베개 등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오른편에는 옷걸이가 세워져 있고, 여자용 한복과 가방 등이 걸려 있다. 무대 중앙에는 여자용 앉은뱅이 화장대가 놓여져 있다.
- 시작하겠습니다.
- 네!
- 잠시 후 문숙은 통이 넓은 바지와 모시 상의를 입고 수건을 든 채 들어온다. 걸음걸이는 가볍다. 껌을 짝짝 소리 내어 씹고 있다. 얼핏 보기에도 20대 신세대다운 당당함과 대참이 엿보인다. 수건으로 목과 얼굴을 톡톡 치며 닦고 장롱 쪽으로 가서 서랍장을 열어 버선을 꺼낸다. 화장대 문짝을 위로 젖혀 열고는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여러 각도로 비추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화장을 하기 시작한다. 긴 머리카락을 참빗으로 정성스럽게 쓸고는 둥글게 말아 비녀를 꽂는다.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폈다하며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재빨리 일어선다. 먼저 속바지를 입고, 버선을 신고 속치마와 한복치마, 속저고리, 저고리를 능숙한 솜씨로 입고는 고름을 주의 깊게 맨다. 그리고 손가방을 들고 화장대의 거울을 통해 매무새를 훑어본다. 활달하게 이리저리 걷는다. 그녀는 “엄마!” 라고 외치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화장대를 정리하며 엄마가 대답이 없자 다시 큰 소리로 부른다. 나갈 채비가 얼추 갖춰지자, 그녀는 장농의 서랍장으로 가 서랍장 안쪽 깊숙이 손을 넣는다. 무엇을 찾는 듯하다. 잠시 생각다가 다시 서랍장을 뒤지기 시작한다. 낡은 베개홑청, 이불홑청 등을 마구 꺼집어 내고 무언가 찾는다. 손가방 쪽으로 가서 손가방 속의 물건들을 방바닥에 쏟아 붓는다. 한참을 생각한다. 그리고 다급히 일어서며 “엄마!” 라고 부르며 방을 나간다.
 
- 미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교육자가 문숙의 에튜드를 보고나서 묻는다.
- 미군부대의 피엑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하는 일은 지극히 단순노동이고요.
- 미선의 하루일과에 대해 이야기 해 볼래요? 재차 교육자가 문숙에게 묻는다.
- 피엑스로 출근하기 위해 아침 6시경에 일어나 아침밥준비와 출근준비를 하고, 오후 6시까지 그곳에서 근무를 합니다. 피엑스에서 미선의 일은 장부정리와 물건을 파는 일이 주입니다. 부수입이 짭짭해서 초콜렛이나 과자 등을 집으로 몰래 가져오기도 하고요. 퇴근해서 집으로 와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야간학교로 갈 준비를 합니다. 일요일엔 교회를 가고요. 최근 들어 교회에 갔다 와서는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 일요일 늦은 오후엔 밀린 빨래와 집안일을 합니다. 문숙은 차근차근 자신의 일과에 대해 교육자에게 대답한다.

- 오케이, 그녀의 외모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그녀가 즐겨 쓰는 단어나 말, 싫어하는 일은 무엇인지도 이야기 해 보세요.
- 일단 텍스트상의 정보로 봐선, 미선은 긴 머리카락을 하고 있고, 젖통과 엉덩이가 크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은 키득거리며 웃는다. 통통한 체격과 제법 큰 키의 소유자여서 육감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외모에 있어서 그 외의 특징은 딱히 없으나, 당당함이나 대찬 신세대 여성 같은 분위기는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엑스에 근무하기에 그녀의 말 속에는 당연히 영어가 간간이 섞여 있고요, 그 중에서도 ‘오케이’라는 단어는 거의 입에 붙어 있다시피 합니다. 학생들은 교육자를 바라보며 박장대소한다. 교육자는 씩 웃는다.

- 그녀가 싫어하는 단어나 일, 그리고 그녀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교육자가 재빨리 분위기를 바꾼다.
- ... 신세대 여성이지만, 사람에 대한 배려심 또한 상당히 갖추고 있는 여자인지라 그닥 싫어하는 단어나 말은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엄마인 경기댁과 가끔 부딪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마당깊은 집의 사람들 일에 사사건건 참견할 때마다 꼬집거나 밤에 잔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의 목표는... 신분상승입니다. 문숙은 활기차게 대답한다.

- 신분상승이라면 어떤 의미이죠?
- 피엑스에서 일하며 돈을 모으고, 그리고 야간학교를 다니는 것은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함이고, 동시에 영어학원에서의 적극적인 수업태도는 미래를 대비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든 그녀의 일은 충분히 신분상승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듯한데요. 문숙은 야무지게 대답한다.

- 오케이. 학생들은 키득거리며 웃는다. 사건은 무엇인가요?
- 장롱 깊숙이 숨겨 놓았던 구리 목걸이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사건의 평가이후 엄마를 찾았고요.
- 오늘 한복차림을 한 이유는 무엇이죠?
- 오늘은 야간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입니다. 
- 오케이, 다음 사람 볼까요?
- 학생들은 또 키득거리며 웃는다. 
           

2013. 03. 04.

연기과 박 상 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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