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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일곱 번째 이야기 - 관찰 작업 17
....................................................................박 상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교수)
- 무신은 무릎을 꿇고 고양이 자세를 취한다. 양손은 테니스 장갑을 끼고 있고, 발에는 색깔이 있는 두꺼운 양말을 신고 있다. 잠시 동안 고양이 자세를 취하고 있던 무신은 고개를 들고 환하게 웃는다. 이내 그는 팔과 다리를 하나씩 무겁게 들어 올린다. 그리고는 팔과 다리를 쫙 편 채로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드러눕는다. 그는 이 자세로 누워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노래를 부른다. 그 모습은 마치 고양이가 나른한 오후에 햇살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갑자기 그는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다시 전의 자세로 급히 돌아온다. 고개를 뒤쪽으로 돌리고 무언가를 보고는 거의 공포의 표정을 짓는다. 눈을 질끈 감고 고양이 자세를 취한 채 허리 위에 있는 무언가를 사력을 다해 버틴다. 점점 허리는 밑으로 처진다. 팔과 다리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잠시 후, 그는 갑자기 전의 자세로 돌아오며 숨을 헐떡인다. 벤치로 분한 무신은 다시 고개를 뒤쪽으로 돌리며 입에 거품을 무는 시늉을 한다. 처음에는 허리가 조금 밑으로 처지다가 다음에는 거의 땅바닥에 닿을 정도다. 그의 팔과 다리는 이전보다 훨씬 부들부들 떨고 있다. 갑자기 다시 전의 자세로 돌아오며 숨을 헐떡이다가 바로 땅바닥에 꼬꾸라진다. 잠시 동안 꼬꾸라져 있던 무신은 천천히 전의 자세로 돌아온다. 이번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린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사뭇 다르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벤치인 그는 허리가 밑으로 처지기는 커녕 어깨와 허리를 들썩거리며 마냥 신이 났다. 마치 좋아하는 주인을 태운 말처럼 엉덩이를 흔들고 있다. 그러다가 그는 고개를 뒤쪽으로 돌려 아쉬운 듯한 눈길을 준다. 이내 그는 팔과 다리를 하나씩 신나게 들어 올리고, 이 자세로 누워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노래를 부른다. “여기까지 준비했습니다.” 무신은 쑥스럽게 일어서며 말한다.
- 언제, 어디에서 관찰한 어떤 벤치인가요? 교육자가 웃으며 질문한다.
- 저희 집 앞에 조그마한 공원이 하나 있습니다. 관찰에 대한 과제를 이것 저것 생각하다가 공원 벤치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었습니다. 저의 눈길이 앞 벤치에 머물렀습니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낙엽으로 뒤덮인 조금은 낡은 벤치였습니다. 햇살은 따뜻했습니다. 꽤 오랫동안 이 공원에 있은 듯 했고, 색깔도 조금 바랬습니다.
- 대상에 대해 차례대로 이야기 해 주세요. 교육자가 무신에게 다시 묻는다.
- 제일 처음의 대상은 햇살이었고, 두 번째는 덩치 좋은 뚱뚱한 남자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두 명이었고, 네 번째는 날씬하고 예쁜 여성이었습니다.
- 학생들은 무신과 교육자의 대화에 고개를 끄덕인다. 오케이! 자신의 목표와 충돌 그리고 목표의 달성을 위한 행동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주세요. 교육자가 천천히 무신에게 질문한다.
- 햇살에 대한 목표로는 온 몸으로, 특히 벤치 아랫부분의 햇살받기였습니다. 그래서 햇살은 저를 따뜻하게 만들어 이완시켰으며, 저절로 노래가 나오게끔 만들었습니다. 뚱뚱한 남자의 다가옴은 가히 저를 공포로 몰아서 어떡하든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버텨야만 했습니다. 두 사람의 벤치로 다가옴은 완전 설상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게 했습니다. 더 이상 버틸 힘도 없었지만, 사력을 다하고 난 뒤 벤치인 저를 결국 쓰러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매력적인 여자의 벤치인 저에게 앉음은 저를 기분 좋게 만들었고, 그전의 힘듦을 까마득히 잊게 했습니다. 그래서 춤과 노래를 부르도록 했습니다.
- 오케이! 교육자는 무신의 대답에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대답한다. 학생들 또한 무신의 거침없는 대답에 감탄사를 남발한다. 다음 주에 관찰 작업에 대한 공개 발표를 할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관찰 작업 공개 발표에 대한 목록 표를 소희에게 넘길 테니, 무대전환 연습을 하도록 하세요! 공개 발표가 끝나면 총평과 개평이 있을 겁니다. 두 달 여 동안 외적 형상화 작업인 관찰 작업에 매진한 여러분은 이제 곧 본격적인 역할 작업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희곡을 텍스트로 사용하지는 않고, 소설을 텍스트로 선택해서 우리의 작업은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은 문학작품 인물 에튜드 작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자, 관찰 작업에 대한 공개 발표에 만전을 기하세요!
2012. 12. 24.
연기과 박 상 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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