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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10 11:05
[목/칼럼] 팝페라 그룹 트루바의 음악칼럼 - 함께 보고 즐기는 콘서트 !!
스무 번째 이야기 - 함께 보고 즐기는 콘서트 !
 .......................................................... 그룹 트루바 (팝페라, 뽕페라 3인조 성악 그룹)

19세기에 들어서 우리가 요즘 흔히 보고 즐기는 콘서트라는게 생겨났다.
정기적인 음악회를 감상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취지로 생겨나게 되었다.
1830년대 말엔 리스트에 의해 독주회라는 형태의 연주회가 처음 선을 보였다고 한다.
17세기 이전에는 직업 연주자라는 것은 거의 드물었다고 한다. 대부분 종교음악들이었기 때문에 수사들이 담당했고, 반면에 음유시인들이 세속음악을 담당했었다.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에 들어서면서 ‘오르가니스트’와 ‘오페라 가수’들이 등장하면서 그들 연주자들은 작곡가들 보다 더 큰 명성을 얻기도 했다.
콘서트라는 말은 ‘모으다’, ‘배열하다’라는 뜻에서 유래가 되었다. 당시 음악가들은 개인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연주하기위해 공공건물이나 선술집 등에서 모이기도 했다. 입장료를 낸 청중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 뛰어난 기량으로 연주를 해 냈었다.

점점 직업 연주자들이 늘어감에 따라 음악단체들은 입장권을 팔고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바로 정기 연주회의 시초가 된 것이다.
18, 19세기의 연주회는 연주 시간이 매우 길고 다양했다. 19세기 들어 ‘바소 콘티누오’가 사라지고 오케스트라의 기본 편성이 구체화 되었다. 그 후 수년간 많은 변화를 겪게 되지만 현대 오케스트라 편성의 형태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오케스트라 편성이 다양해지면서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었고, 콘서트홀도 제한되어 있었던 규모에서 벗어나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극장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음악회의 다양한 형태와 수많은 연주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많은 연주회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바그네는 자신의 작품을 연주할 때 청중들이 곡의 내용을 함께 느끼고 호흡하기를 원했다.
객석의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불이 훤하게 켜져 있을땐 관객들이 서로 대화하기도 하고 소란스러웠다고 한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음식도 먹으면서,,,
객석의 불이 꺼지면서 관객들은 연주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연주자들도 연주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콘서트라는 것이 생겨 난 역사를 살펴보았는데, 그냥 생긴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고, 관객을 이해시키고 인내했을 연주자들의 고뇌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바그너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우린 소란스러운 관객들을 앞에 두고 미묘한 현대음악의 화음을 표현해야 했을 것이다.

작곡자의 의도와 악기의 특성 연주자의 성향 등은 우리를 다양한 음악으로 초대한다.
한 작품을 연주하더라도 그것에 따라 다양한 색깔이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음악제에선 휴대전화 소리를 일부러 시끄럽게 하게 한다. 요즘 공연장의 불청객중 최고는 바로 휴대폰 벨소리가 아닌가! 한창 음악에 집중하노라면 요란하게 혹은 조용하게 벨소리가 울린다. 그것을 체험해보라는 ‘안내성’ 권유였다.

무대에서 들려오는 연주자들의 소리들은 좋은 앙상블을 이루며 우리로 하여금 집중하게 하지만, 객석에서 들리는 다른 소리들은 우리 얼굴을 찌푸리게 하곤 한다.
물론 적극적으로 이 휴대전화 소리를 공연에 결합하려는 시도도 없진 않다. 미국의 작곡가인 ‘데이비드 베이크’의 ‘휴대전화와 교향악단을 위한 작은 협주곡’이라는 작품은 관객들을 향해 휴대전화를 켜주시라고 당부한다.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과 브람스 교향곡 4번이 울리는 가운데 조명에 따라 무대와 객석에서 다양한 벨소리가 터져 나오도록 하기도 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지휘자들은 의도된 설정을 시도하기도 한다.
예컨대 새해가 되려고 하는 자정에 공연을 멈추고 지휘자에게 전화를 걸게 해 연결된 관객에게 선물을 준 적이 있었다. 필자도 그 공연에 참가해서 경쟁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시대가 변하면서 콘서트의 모습은 점차 관객을 향해 어쩌면 관객의 가려운데를 긁어주려는 시도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 팝페라 그룹 트루바의 공연도 관객이 팔장만 끼고 있는 것을 보기 원하지 않는다.
가수와 같이 호흡하고 함께 즐기고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더 원한다.
음유시인인 ‘트루바두르’에의해 우리 사는 많은 이야기들이 이곳저곳으로 전해졌듯이 21세기 음유시인인 우리 트루바도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사람 사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우리가 가진 모든 재능을 사용하여 말이다.

역사적으로 뛰어난 연주자들만큼은 아니지만, 더 공부하고 연구하여 콘서트를 즐기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어쩌면 관객의 시끄러운 반응조차도 그리워질때가 있지 않을까?
연주자와 관객이 어우러져 벅찬 감동을 느끼는 그런 콘서트를 하고 싶다.
여러분 그런 콘서트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
 
2012. 9. 6.

팝페라 그룹 트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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